조선시대 공무원 봉급

조선시대 관료들 월급은 정 1 품계 급부터 종 9품까지 까지 차등 지급했다.

개국초부터 임진왜란 병자호란 전까지는 관료들은 최말단 종 9품도  녹봉만으로 풍족하게 먹고살만했다.

하지만 임란과 호란 2번의 전쟁과 경신 대기근 발생 이후부터는 녹봉이 확 줄었다.

더 이상 관리들은 나라에서 주는 녹봉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을 정도로 월급이 급감했다.

그나마 고위직 관료에겐 쌀이나 면포로 지급되는 녹봉 말고도 노비가 하사되고 토지도 주어졌다.

임진왜란 이전까지 정 1품과 종 9품의 녹봉 차이는 3배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빈부격차는 크지 않았다.

전쟁 이후 녹봉이 확 줄어드는데 조선 초기 동일 품계 녹봉의 1/4~ 1/6까지 줄어들었다.

조선시대 말에는 정 1품의 녹봉과 종9품의 녹봉차이가 10배 이상 벌어졌다.

가장 녹봉이 풍족하게 지급될 때 정 1품의 연봉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2억정도 된다는 분석도 있다.

조선말의 정1품 연봉은 현재가치로 환산했을 때  4-5천만 원(다른 글에서는 2-3천만 원) 수준으로 확 떨어졌다.

종 9품의 녹봉은 녹봉만으로는 혼자서도 생활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

역사적으로 공무원 월급도 임란을 전후로 해서 확 줄었지만 각 관공서에 아예 예산도 배당을 안 해줬다.

이 때문에 환곡을 이용한 부정이 판을 쳤고, 국가에서도 예산을 못 배정해주니 관리의 비리를 어느 정도 묵과한다.

명종 시기에는 일분모 회록이라고 해서 환곡을 통한 지방 예산의 1/10을 중앙에서 갈취해갔다.

인조 때는 삼분모 회록이라고 지방 예산의 3/10을 중앙에서 갈취해갔다.

세도정치기에 이르렀을 때는 지방재정과 공무원 임금이 파탄 나고 비리가 판을침..

조선시대의 봉급은 월급제가 아니라 고려 때와 마찬가지로 1년에 2번 녹봉을 지급했다.

그러던 것이 세종 21년부터 춘하추동 분기별로 지급하는 반록(頒祿) 제를 시행했다.

녹봉의 지급은 현물이 아니라 일종의 어음과 같은 목표를 지급했고, 이 녹표를 광흥창에서 현물로 교환해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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